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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품위

뭐든창하 2026. 6. 2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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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어른의 씨앗은 누구에게나 심겨 있는 게 분명하다. 조금 더 살았다고, 조금 더 경험해봤다고 경솔해지는 순간 그 씨앗은 빠르게 자라나는 것일 테다. 미리지나온 시간을 지혜롭게 활용해 경청하고 겸손해지려는 노력을 기본값으로 착장해야 그나마 품위 없는 어른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늙지만 누구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킨츠기'라는 도자기 수리 기법이 있다. 깨진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원래 자리로 붙인 뒤 금가루나 은가루로 금이 간 부분을 따라 장식, 보수하는 방식이다. 우리 모두 어딘가엔 금이 가 있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감추고, 누군가는 그 틈을 정성스럽게 메우며 살아간다. 지금의 나를 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실수를 하고, 자기 전 누워서 후회하는 장면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금이 간채로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어째서 나는 하나에 마음을 쏟지 못하고, 늘 여러군데로 애정을 분산시킬까. 그것은 일종의 방어기제 같았다. 하나만 붙들면 반드시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따른다. 하지만 여러 개를 동시에 붙들면 조금씩만 성과를 내도 잘 해낼 일의 총합이 더 커지는 듯한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 '괜찮아, 이게 안돼도 다른 게 있잖아'라는 자기 위한 속에 머물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완벽해지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쳤기에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이다. 그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리고 해내느라 정작 나는 서서히 닳아가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이 많다는 건 즐겁지만 그 끝에 공허함이 있었다. 새로움에 끌려 관심을 옮겨 다니는 동안, 정작 나만의 취향이 뿌리내릴 시간은 얻지 못했다. 시간이 쌓이며 숙성되는 오래 곁에 두고 깊어지는 취향. 그건 결국 하나를 오래 붙들어야만 만들어지는데, 나는 늘 그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행복을 마치 가만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트로피 같은 물건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행복은 어떤 지점에 가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기분 좋은 감정이다.
누군가는 일단 부딪혀 보는 용기로 나아가고 나는 '만약'을 떠올리며 나아간다.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한 진심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나는 허기를 채우는 방법과 비슷하게 결과를 급하게 내놓는 데 익숙했다. 과정에 시간을 들이는 건 사치라고 여겼고, 무언가를 오래 붙잡고 있는 건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다. 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빠르게 만족감을 얻고자 하다 보니 계속해서 얕은 일만 하게 되었다. 무엇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결과부터 먼저 계산했다. 과정에서의 실패나 우회는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더디게 성장해야 하는 일은 아예 망한 일로 여기고 뒤로 미뤘다. 덕분에 하는 것마다 웬만큼은 해네는 '타율 높은' 사람으로 겉치장을 할 수 있었지만, 될 것 같은 것만 하면서 사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늘 저 밑에서 나를 불안하게 했다.
번아웃이 올 거 같아 일을 그만둘지 고민하던 시기의 나에게 친구가 했던 말이 종종 떠오른다. "네가 스스로 쉬지 않으면 나중에 타의로 쉬게 되는 날이 온다"라고, 몸이 아프거나 일이 어그러지거나, 감정이 무너지는 식으로라도 멈추는 때가 생긴다는 말이었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기는 어렵더라도 읽는 태도는 분명 삶을 달라지게 한다.
막연하게 선택한 꿈은 예상치 못한 바람에도 쉽게 금이 간다. 애초에 내 안에서 자라난 게 아니라 바깥에서 끌어온 욕망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바뀌면 혹은 주변의 오지랖과 조언에 따라 꿈의 형태도 흔들린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진짜 꿈이란 실패한 다음에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좌절해 봐야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친구, 모르는 사람 이렇게 두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친구, 뜨뜻미지근한 친구, 그냥 지인, 일하는 사이, 관계자(?) 이렇게 다양한 빛깔의 관계가 존재한다. 애써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않으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더 좋은 관계가 따라왔고, 눈치 보지 않으니 누굴 만나도 불편할 게 없었다. 마음을 건넨 뒤에도 그 결과에 매달리지 않으니 상처받을 일이 없어졌다. 관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 마음을 진심으로 다 쓰고 그 이후는 흘러가게 두는 일뿐이라는 걸...
질투하는 이유는 상대가 가진 것이 크거나 화려해서가 아니었다. 나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정작 나는 해내지 못한 데서 오는 아쉬움에 가까웠다. 질투는 내가 원하면서 아직 갖지 못한 것을 정확히 찌르기 때문에 더 깊은 감정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럴수록 질투를 외면하는 것보다 내가 왜 질투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질투심이 곧 내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표지판일 수도 있다.
"도망쳤다고 혼나는 건 인간밖에 없다." 다른 동물들은 도망쳐야 살아남는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 도망은 비겁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모든 도망을 미화할 수는 없지만 어떤 도망은 삶의 전환점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새로운 곳에 낙원이 없을 수도 있지만 도망간 꼭이 꼭 지옥이라는 법도 없다. 어떤 때는 도망쳐도 정말 괜찮다. 도망친 곳에서 어떤 태도로 다시 삶을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한게 아닐까. 그러니 도망 이후의 선택에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낙원이 아니더라도 그저 조금 덜 아픈 하루가 시작된다면 그곳도 꽤 괜찮은 출발점일 수 있다.
헤맨 만큼 내 땅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말이 아닌 행동이 그 사람을 만든다. 작은 발걸음들이 쌓이다 보면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 없는 온전한 내가 만들어진다.
위기가 오면 누구나 흔들린다. 하지만 어떻게 흔들리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기도 한다. 위기에 맞서는 태도는 삶의 습관이자 가치관이기도 하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나를 지키는 힘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다. 불행이 찾아오는 것은 내 힘으로 막을 수 없지만,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방식을 선택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무엇보다 책임질 수 없는 일에 선뜻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무책임할 수 있다. 문제의 크기가 클수록 결국 그 해결은 각자의 몫이다. 진신 어린 조언과 위로를 건넨다 해도,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 사람의 몫이고 결과 역시 누구도 대신 감당해줄 수 없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타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하며, 도움이 되고 싶다면 그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ㄹ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라는 것을 아주 천천히 깨달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인간으로서의 예의만 잊지 않으면 돼" 사회생활을 버텨내게 만드는 힘은 탁월한 능력보다도 서로에 대한 배려와 예의에서 비롯된다. 사회인이 된다는 건 단순히 업무를 빠르게 익혀서 잘 하게 되는 게 아니라 복잡다단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좋은 인연을 오래 곁에 두는 데 필요한 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닐라 일상적인 애씀이라는 것을 느낀다. 오랜만에 연락을 하더라도 서로 어색하지 않은 적당한 거리감, 도움이 필요할 때 묵묵히 다가가 줄 수 있는 용기, 상대가 주저앉을 때 같이 옆에 조용히 앉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들.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노력이 있다면 관계는 오래 유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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