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뭐든창하 2004. 2. 2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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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ave...]

지은이 : 김문영
펴낸곳 : 샘터

정말 여운이 많이 남은 책이다...
영화로는 스님들의 이야기라는 예고편만 보고 신경도 쓰지 않았었는데...
책을 읽고나니까 영화로도 꼭 보고싶어졌다...
이런 책들이 좋다..
읽고나면 모든 사람들에게 다 똑같은 느낌을 같게하는 책이 아닌...
읽는 사람들마다 각각 다른 느낌을 얻을수 있는...

-----------------------------------------------------------------------------------"똑같이 생겼어도, 어떤 풀은 약이 되고 어떤 풀은 독이 돼, 너 산에서 버섯 본 적 있지?
독버섯 색이 오히려 더 곱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겉모습만 가지고는 알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은 얼굴이 미워도 맘이 고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약이 되기도 하구, 또 어떤 사람은
얼굴이 아루미 예뻐도 다른 사람한테 독이 되기도 하는거야.
잘 생각해보렴,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전 사랑을 한 죄밖에 없습니다! 전, 그 여자만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걸 모두
주었습니다. 수도자의 길을 버리고, 파계를 하면서까지, 저는 그 여자에게 모든 걸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가 아닌 다른 남자를요!"
"그랬구나"
"그게 말이 됩니까? 저는 그 여자를 위해 모든 걸 버렸고, 그 여자를 위해서 모든걸 바쳤는데?"
"그래서?"
"그래서....그래서 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네가 가진 걸 주면서, 그걸 주고 있다는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다녔구나."
"저는 제게 가장 소중한 걸 주었던 겁니다. 이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에잇!"
사내는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은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아직도 화를 참을 수가 없느냐?"
"예."
"네게 가장 소중한 걸 주었던 사람을 죽여놓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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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그윽한 불교의 가르침이 산뜻한 수채화 한 폭에 담겼다.

이야기의 얼개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 되풀이되는 생사의 수레바퀴쯤 되겠다.
봄은 여름으로, 여름은 가을로, 가을은 겨울로 겨울은 다시 봄으로 이어진다.
네 계절이 저마다 그 모양과 색깔은 다르지만 그러나 사실인즉, 같은 시공(時空)이 봄으로
여름으로 가을로 겨울로 그리고 다시 봄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계절의 바뀜에 인생 유전(流轉)이 엇물리며 펼쳐진다.

은 싹트고 꽃피는 계절.
동자승 가슴에 번뇌의 싹을 틔운 것은 무명(無明)이다. 물고기와 개구리를 괴롭히고 뱀을 죽게 하는데,
그것들의 아픔이 제 아픔이요 그것들의 죽음이 제 죽음인 줄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명으로 지은 업(業)은 같아야 한다. 동자승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한테 주었던 고통을 그대로 돌려받으며 괴로원한다.

계절은 바뀌어 열매가 맺혀 자라는 여름이 찾아온다.
동자승은 누가 봐도 의젓한 사내로 되어 이름 또한 '소년승'이다.
병을 고치러 암자를 찾아온 소녀 주연과 사랑의 감정에 빠져들고, 마침내 암자와 세상 사이를 이어주는 배에서 둘은 몸을 섞는다.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 숙인 소녀에게 스님이 묻는다.
"이제 아프지 않느냐?"
"...네."
"그게 약이었구나."
"........"
"이제 나았으니 떠나거라."
깜짝 놀란 소년승이 안된다고 소리지르자, 스님은 한 마디 말을 남기고 법당 안으로 사라진다.
"사랑을 조심하거라. 사랑은 집착을 낳고 집학은 살의(殺意)를 낳는법이니라."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소년승은 비단뱀 두 마리가 몸을 섞으며 하나로 되는 꿈을 꾼다.
이튿날 새벽, 목불상을 봇짐에 챙겨 넣고서 소년승은 암자를 떠나 바깥 세상으로 내려간다.

가을.
바야흐로 열매가 영그는 계절이다. 스님 말대로 사랑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욕망과 살의를 낳았다.
서울로 간 청년은 소녀를 만나 한동안 행복한 세월을 보내지만, 여자가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자 분노와 질투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애욕이 그 열매를 맺은 것이다.
어느덧 스님은 노스님이 되었고 암자에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날, 쫓기는 살인범이 암자에 나타난다.
사내는 가방에서 목불상을 꺼내 그동안 비어 있던 불단에 올려놓지만 차마 불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
노스님이 조용히 말한다.
"속세의 삶이.....고단했구나. 좀 쉬어라."
형사들을 피해 암자로 도망오긴 했지만 자신이 씨를 뿌려 열매 맺은 '번뇌'로부터 피할 길은 없다.
스스로 숨구멍을 막아 죽으려 할 때, 노스님이 나타나 몽둥이로 사정없이 친다.
피투성이로 쓰러지는 번뇌 덩어리!
노스님은 고양이 꼬리에 먹물을 젹서 마루 바닥에 반야심경(般若心經) 마지막 문장을 쓴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가라, 가라, 진리를 향하여. 가라, 저 평안의 언덕으로)

노스님이 사내 손에 칼을 쥐어주며 말한다. 살인에 썼던 그 칼이다.
"저 글자들을 칼로 파거라. 한 글자씩 파면서 네 마음의 분노도 파내거라."
마루바닥을 파내는 사내의 칼날이 흔들리고 손에서는 피가 배어나온다. 그때 나타난 형사들에게 노스님은 말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반야심경이요. 마저 파고 가게 해주시오."
"얼마나 걸리죠?"
"내일 새벽이면 끝날 거요."
밤새도록 글자를 새긴 사내는 지쳐 스러져 잠들고, 형사들은 노스님을 도와 새겨진 글자에 노랑 주황 보라색을 칠한다.
아름다운 색깔로 단장한 반야심경에 아침햇살이 비칠 때, 사내는 형사들과 암자를 떠나고, 노스님은 그의 가방에 목불상을 넣어준다.
"비워놓으마. 다시 가지고 오너라."
사내를 떠나보낸 노스님은 배 위에 장작을 쌓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어 스스로 열반에 든다. 타오르는 장작불 속에서, 마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속삭이듯,
스님의 마지막 말이 흘러나온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다. 평안하라, 안락하라."
깊은 가을, 열매가 영그는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겨울이다.
온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암자와 바깥세상을 격리시키면서 이어주던 연못도 얼음덩이가 되었다.
그 위를 걸어서, 이제는 장년이 된 사내가 암자에 나타난다.
사내는 폐허가 된 암자에 촛불을 밝히고 노스님의 시신을 수습한다.
잿더미에서 사리들을 건져 목불상 안에 넣고 그것을 연못에 묻는다.
암자로 돌아온 사내는 커다란 얼음덩이를 손으로 녹여 불상을 만들고 그 앞에 기도를 올린다. 그에게서 살인자의 불안하고 고통스런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직 겨울이 한창일 때 아기를 등에 업은 여자가 암자를 찾아온다.
여자는 아기를 두고 밤중에 연못을 건너다가 깨어진 얼음장에 빠지고....
스님은 아기에게서 지나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간에 겪었던 "외로움, 사랑의 격정, 집착과 증오가 낳은 살인, 참회의 시간들, 그리고 또 세월이 흐른 뒤 찾아온
깨달음의 순간들"을 흙과 함께 반죽하여 토불(土佛)을 빚는다.
미소를 띄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근엄한 표정의 미륵불,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다.
그 토불을 품에 안고서, 허리에 맷돌을 달아맨 스님이 눈길을 헤치며 힘겹게 산을 오른다.
어린 시절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에게 달아멨던 돌멩이처럼 자신의 가슴에 안고 살았던 번뇌 덩어리를 이제 그만 던져버리고 싶다. 참회하는 스님의 두뺨에 눈물이 흐른다.
막바지에 이른 겨울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데, 잘못하여 굴러 떨어진 토불을 주우러 산을 내려갈 때 문득 들려오는 노스님 목소리.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신창이 몸으로 토불을 안고 다시 정상에 올라 넓은 바위에 불상을 모시고 그 곁에 가부좌를 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 모습은 "미소를 띠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또 하나의 반가사유상!

다시, 봄이다.
스님이 내려다보는 뜰에서 동자승이 놀고 있다.
물고기, 개구리, 뱀을 잡아 그 주둥이에 돌을 집어넣고 깔깔대며 웃는 동자승.
그 모습을 스님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동안 수없이 계절이 바뀌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의 모습이 달라졌건만 진실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가고 또 다시 봄이 오듯이.

그렇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어리석음이 빚은 집착과 애욕과 분노와 그로 말미암은 번뇌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되풀이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고리를 물고 이어지듯이.
그러나, 어둠 없는 곳에 어찌 빛이 있으며 번뇌 없는 곳에 어찌 열반이 있으랴?
그러므로 고마운 일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뿌린 씨에서 번뇌의 열매를 맺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세상 온갖 고통을 품어 안고 미소짓는 부처로 되살아날 수 있다니!
중생이 곧 부처요 번뇌가 곧 열반임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이제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며 누구를 심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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